마라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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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마라도
마라도 전경
인구/가구 : 40 여 세대 / 90 여 명
전체면적 : 0.3㎞²(임야 0.27㎞² , 기타 0.03㎞²) / 섬둘레 : 4.2km / 해발 : 39m / 동서길이 : 0.5km / 남북길이 : 1.25km
모슬포 거리 : 11km(소요시간 : 30분)
주요 선착장 : 4개소(살래덕, 자리덕, 장시덕, 신작로)
주 요 기 관 :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 서귀포경찰서 마라출장소, 마라등대, 마라교회, 기원정사
지정 면적 : 6.750m² (육지 141, 해안 6.609)
지정연월일 : 2000.7.19(지정번호 제423호)
본래 무인도로써 마을 설촌유래는 문헌이나 기록은 없으며 전설에 의해 추리할수 밖에 없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20여년 전인 1883년 부터이며, 당시 대정골에 거주하던 김씨가 도박으로 가사를 탕진하여 생활능력을 상실하자 친척들이 고을원님에게 섬의 개척을 건의, 제주목사 심현택이 인가하여 이주하게 됨. 해방후 행정구역상 대정읍 가파리로 소속되어 오다가 1981년 마라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
마라도는 북위 33˚ 6´ 33˝ 동경 126˚ 11´ 3˝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 0.229㎦(약10만평) 동서폭 0.5㎞ 남북길이 1.2㎞ 해발 39m 해안선 길이 4.2㎞의 작은 섬이다. 한척의 항공모함을 연상케하는 대한민국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써 개척 이전에는 "금(禁)섬"으로 불리워지는 곳으로 인근 사람들이 신비스럽게 여기면서도 접근을 꺼렸던 섬이었다. 옛날에는 울창한 원시림으로 뒤덮혀 있었고 해안에는 해산물이 풍부하였으나 주변지역의 파도가 높고 기후의 변화가 심하여 당시 교통수단으로는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날씨가 풀려 해상위험도가 적을때는 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간혹 섬에 상륙하여 나무를 베어가고 해산물도 채취했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이 살기 시작할때는 제주 특유의 나무절구인 <남방애>를 만들 수 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였으나 이주민들이 농경에 필요한 경작지를 마련하고자 숲을 태워 없애고 탄자리를 일구어 농지로 바꾸어 나갔다고 하며 전설에 의하면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 중 한 사람이 환한 달밤에 퉁소를 부는데 그 소리를 듣고 수많은 뱀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 놀란 이주민은 그 뱀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숲에 불을 질렀는데 타기 시작한 나무는 석달 열흘이 지나야 불길이 멎었고 이 때 뱀들은 꼬리를 물고 바다를 헤엄쳐 제주도의 동쪽 지방으로 건너 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마라도에는 뱀과 개구리가 없다.

마라도 해안선은 기암절벽을 이루어 절벽 밑에는 해식 동굴이 산재해 있고 섬 전체가 현무암석 덩어리로 되어 있다. 이러한 암석은 해저에도 깔려 있어 이지역의 해안에는 패류, 해조류, 연체류 등 수산물의 최적 서식지로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제주도 어느 해안보다 해산물이 풍부하여 전복, 소라, 해삼, 성게, 미역, 톳 등과 특히 봄 여름에 잡히는 마라도산 자리는 옛부터 유명하다.

또한 동쪽해안은 태평양의 거센 파도에 침식되어서 이곳사람들이 "그정"이라고 부르는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 높이가 무려 39m에 이르며 그곳에 자라는 백년초와 억새는 섬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선착장으로는 살래덕, 자리덕, 장시덕, 신작로 4곳이 있으며 자리덕은 사시사철 자리돔이 많이 잡히기 때문에 연유한 이름으로, 주의환경이 마치 병풍을 두른것처럼 20~30m의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동풍이 불 때 자연적으로 바람막이 구실을 해준다. 현재 마라도는 40여세대에 90여명이 살고 있으며 하루 700여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50여실의 민박시설을 갖추고 있다.